요즘 사람들은 왜 ‘되는 척’에 진심일까?

트렌드 · 2025-05-12

“되는 척”에 진심인 시대

요즘 당신의 SNS에는 어떤 모습이 올라가 있나요? 자주 여행을 다니는 모습, 세련된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바쁜 일상 중에도 자기계발을 놓치지 않는 나. 이런 이미지들이 당신의 타임라인을 채우고 있다면, 아마 당신도 ‘되는 사람처럼 보이기’에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 겁니다.

물론 잘 사는 것, 멋진 삶을 꾸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목표를 이루기보단 그렇게 보이려는 시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되는 척’이 일종의 생존 전략처럼 작동하는 오늘, 우리는 왜 이토록 보이는 것에 집착하게 된 걸까요?

black smartphone near personPhoto by Headway on Unsplash

SNS는 거울이 아니라 무대다

오늘날 SNS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브랜드를 형성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퍼스널 브랜딩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어떻게 보이느냐에 따라 기회도, 평가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인스타 감성”이라는 단어처럼, 플랫폼마다 통용되는 ‘보여주는 방식’까지 존재하죠.

그 결과 우리는 점점 더 자신을 ‘편집’하게 됩니다. 아무 일도 없는 일상을 특별해 보이게 만들고, 실패는 감추고, 성공의 순간만 조명합니다. 자연스러운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일종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되는 척”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진짜 내가 아니라, 잘되고 있어 보이는 나. 그 이미지를 꾸미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면, 진짜 삶은 점점 소외되고, 자존감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지기도 합니다.

‘되는 사람’에 집착하는 불안의 심리

왜 우리는 이렇게 ‘되는 사람처럼 보이기’에 집착할까요? 그 뿌리는 깊은 불안감에서 출발합니다. 지금 이대로의 나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 타인의 성공적인 모습과 비교하면서 생겨나는 열등감.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보다는 ‘나도 괜찮은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적인 시도.

심리학에서는 이를 ‘외현 중심 비교 심리’라고 합니다. 내면의 상태보다 외적인 성취나 이미지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이죠. 퍼스널 브랜딩이 중요한 시대일수록, 그 기준은 더 강화됩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링크드인의 이력서, 유튜브의 조회수. 모두가 내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작용합니다.

결국 우리는 본질보다 껍데기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됩니다. “진짜 잘되고 있는가?”보다 “잘되고 있어 보이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어버린 거죠.

사례: SNS에서만 반짝이는 삶

한 지인이 있습니다. 그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데, SNS를 보면 마치 세계를 누비며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매일 커피숍, 출장, 고급 장비. 그런데 가까운 사이인 저는 압니다. 그는 수입이 일정치 않고, 일 없는 날엔 불안해서 잠을 못 잔다는 것을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보여야 일이 들어오니까.” 그는 자신도 모르게 ‘되는 척’이 전략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는 그 프레임 속에 들어가 있고, 때론 타인의 ‘척’에 위축되기도 하죠.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보여주기식 삶에 대한 회의감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멈추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이 기회를 결정짓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때론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가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된다’는 증명일지, 아니면 안정감 있는 삶과 진짜 자기 자신일지 말이죠.

보이는 것과 진짜 사이의 균형

‘되는 척’이 완전히 나쁜 것은 아닙니다. 때론 그것이 동기가 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다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 이미지 뒤에 있는 불안과 공허를 마주하고, 진짜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로우버전(low version)의 나’를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빛나는 순간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나, 불완전한 나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인식. 그것이 결국 진짜 ‘되는 삶’으로 가는 첫걸음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