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안심을 사는 심리: 과잉보장의 행동경제학

심리 · 2025-05-28

보험은 왜 늘 불안한가: '과잉보장'이라는 심리 방어

“이것도 들어두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보험 상담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질문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미 실손, 암보험, 종신보험까지 들었지만, 뇌질환, 심장질환, 운전자 보험까지 권유받을 때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혹시 빼면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스며듭니다. 보험은 원래 안심을 사기 위한 제도지만, 그 안심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과잉’이라는 선택을 반복합니다.

man in orange long sleeve shirt sitting on gray couch Photo by Joice Kelly on Unsplash

손실을 피하려는 마음이 불안을 만든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손실 회피 경향(loss aversion)”이 인간의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사람은 같은 금액의 이득보다 손실에서 받는 충격을 약 2~2.5배 더 크게 느낍니다. 보험가입은 이 심리를 정확히 파고듭니다. “이 특약 없으면 치료비 몇 천만 원이 부담됩니다”라는 말 한마디에, 사람들은 발병 확률과 재정 여력보다 감정적 충격을 먼저 떠올립니다.

이때 발생하는 또 다른 편향이 ‘기저율 무시(base rate neglect)’입니다. 실제 발병 확률은 0.2%에 불과하지만, 뉴스나 주변 사례가 강하게 기억되면 우리는 이를 훨씬 높은 확률로 인식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필요한 보장이 아닌, ‘기억에 강한 병’ 위주로 보험을 쌓아갑니다.

안심보다 커지는 부담: 과잉보장의 비용

30~50대 평균 보험료는 월 40~60만 원대에 달합니다. 특히 자녀가 있는 가정일수록 보장 범위는 넓어지고 특약 수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보험리모델링 전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대부분 가정이 보장 수준이 아니라 심리적 안심 수준으로 보험을 구성합니다. 결국 필요한 순간에는 정작 돈이 부족하거나, 중복보장으로 낭비가 큽니다.”

실제 상담 사례를 보면, 유사암 특약이 3개 상품에 중복 적용돼 있지만, 고객은 이를 몰랐고 해약 시 손해가 크다는 말에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정보 편향(information bias)의 결과입니다. ‘정보가 많으면 안전할 것이다’는 착각은 과잉보장으로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판단을 흐리고 구조를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감정에서 전략으로: 보험설계의 심리 기술

보험은 감정을 다루는 서비스입니다. 그렇기에, 그 감정을 인식하고 구조화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다음은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제안하는 실전 가이드입니다:

보험은 불안을 부정하는 도구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안을 안고 삽니다. 하지만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너무 많은 보험을 들면, 새로운 형태의 불안—재정 부담, 구조 복잡성, 해약 손해—이 생겨나게 됩니다. 보험설계는 감정과 전략이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감정이 무시돼선 안 되지만, 기준 없이 끌려가서도 안 됩니다.

text Photo by Kelly Sikkema on Unsplash

보험은 결국 리스크의 사전 배분입니다. 내가 어떤 위험을 우선시하고, 어떤 감정을 받아들이고, 어떤 조건에서 안심할 수 있는지 스스로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보험은 감정에 휘둘리는 선택이 아닌, 삶의 구조를 지지하는 전략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