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현과 이창호, 그들의 ‘승부’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유
트렌드 · 2025-05-11
조훈현과 이창호, ‘승부’를 통해 드러난 인간관계와 감정의 심리
“인생에서 스승을 이긴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그 순간은 기쁘기도 하지만,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울컥했다”고. 누군가에게 배운다는 건 그 자체로 감정의 결이 얽히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에서 벌어진 진짜 ‘승부’는 바둑판 위가 아니라, 마음속에서 이뤄졌는지도 모릅니다.
영화 ‘승부’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바둑계의 전설 조훈현, 그리고 그를 뛰어넘은 천재 제자 이창호. 한때 ‘신의 경지’라 불리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스크린에 올라오자 많은 이들이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단지 바둑팬이어서가 아니라, 우리 삶에도 이와 닮은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훈현은 한국 바둑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개척자였습니다. 그는 거침없이 기보를 짜며 수많은 승리를 거뒀고, 이창호는 그런 스승에게서 배운 ‘사제의 정석’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석이란 늘 승부 끝에 무너집니다. 1989년, 당시 14세였던 이창호는 36세의 조훈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이 대국은 단순한 바둑 시합이 아니라, 시대의 전환을 알리는 ‘세대교체의 서막’이었죠.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냉정했더라면...” 조훈현의 인터뷰 중 한 대목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도, 그는 이창호를 향한 애정과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창호는 조용했습니다. 언제나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당시 주변은 압박과 부담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스승을 이긴다는 것'의 무게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제자 본인이니까요.
우리는 이런 구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내가 키운 후배가 나를 넘보는 순간, 가족 내에서 자식이 나보다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볼 때, 스승을 이긴 제자처럼 누군가와 경쟁해야 할 때.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울컥하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이게 됩니다. “그래, 이건 성장이지. 내가 잘 키운 거야.”
영화 ‘승부’는 그 감정의 결을 아주 조심스럽게 들여다봅니다. 단지 바둑을 두는 장면이 아닌, 눈빛과 침묵, 손끝의 떨림, 숨죽인 한 수. 모든 것이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다가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 ‘승부’가 결국 ‘존중과 이해’로 끝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의 우리는 빠르게 앞서가고 또 빠르게 사라집니다. 경쟁은 더 치열하고, 관계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누군가는 조훈현이고, 누군가는 이창호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승부가 지나고 난 뒤 서로를 인정하고 웃을 수 있느냐는 것이겠죠.
진짜 승부는 바둑판 위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의 틈새, 감정의 골짜기, 그리고 스스로를 넘어서야 하는 용기 속에 있습니다.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처럼요.